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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형문화 없는 문화재는 문화의 주검
철부지 아이들 가운데 매우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딸은 어머니가 낳고 아들은 아버지가 낳는다는 것이다. 아들딸 상관없이 아기는 모두 어머니가 낳는다는 단순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아이들의 세계이다. 이러한 발상은 철부지답게 천진스러운 면이 있어서 재미있게 인식된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고 하는 착각을 한갓 재미로 여기며 지나칠 수 없다. 왜냐하면 착각을 일깨워 주지 않으면 사실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철부지 세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화를 곧 문화재로 알거나 문화재는 곧 유형문화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철부지 수준의 문화 인식은 아이들의 착각처럼 유형문화재는 유형문화가 낳고 무형문화재는 무형문화가 낳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형문화재든 무형문화재든 모든 문화재는 무형문화가 낳을 뿐만 아니라, 그 보존과 활용도 무형문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무형문화는 유형문화재를 포함한 모든 문화재의 어머니이다.
더군다나 유형문화재의 존재 이유도 무형문화에 있다. 무형문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유형문화는 문화재로서 보존할 가치를 확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무형문화가 없으면 유형문화는 생산도 보존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무형문화는 모든 문화재의 어머니이자 알맹이일 뿐아니라, 우리가 가치 있게 추구하는 문화의 본디 존재양식이다. 따라서 유형문화는 어디까지나 무형문화에 의해서 생산되고 무형문화의 필요성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자, 무형문화의 수준에 따라 보존되며 무형문화의 관심에 따라 지속되는 무형문화의 종속물이다. 그러므로 무형문화 없는 유형문화재는 사실상 문화의 주검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우리는 살아 있는 문화가 아니라 문화의 주검을 애지중지하면서 문화재 정책을 펼쳐왔다. 유형문화재 중심의 정책은 무덤 속의 ‘미라’를 문화재로 숭배하느라 생활세계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외면한 셈이다. 그러나 유형문화재에 매몰된 사람은 유형문화재를 문화의 주검으로 간주하는 것에 관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화재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문화재 정책의 편견과 비판적 성찰
문화재 정책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집(house)과 가정(home)을 보기로 유형문화와 무형문화를 대비하여 인식할 수 있다. 집과 가정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지만, 그 선후와 주종 관계는 분명하다. 집이 있어서 가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있어서 집이 있는 것이다. 가정이 없는 빈집은 많아도 집이 없는 가정은 없다. 지금 분양되지 않은 빈집들이 엄청 많다. 집이 가정의 둥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갓 상품으로 생산된 까닭이다. 그러나 집 없는 가정은 없다. 경제적으로 빈곤하여 집을 소유하지 못해도 집에서 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 집이 화려하든 소박하든, 자택이든 셋집이든, 번듯한 저택이든 초라한 움막이든 가정이 있으면 일정한 구조의 집이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가정은 집을 반드시 만들어내지만, 집은 가정을 꼭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집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집은 가정을 위해서 있는 구조물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아무리 번듯해도 점점 퇴락되다가 마침내 폐가로 전락하게 된다.
영혼이 없는 몸이 점차 부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에 우람했던 종가와 재실들이 곧잘 무너지는 까닭은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집도 그 자체로는 존립할 수 없고 존립해야 할 절실한 이유도 없다. 그러나 가정은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은 물론 존립해야 할 이유와 가치가 있다. 가정은 행복한 삶을 이루는 무형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집은 그러한 보금자리를 위한 둥지일 뿐이다. 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가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집은 독점 가능한 경제적 자산으로서 교환 가치를 지닌 것이나, 가정은 독점 불가능한 문화적 자산으로서 의미 가치를 지닌 것이다. 따라서 시장 논리로 보면 경제적 독점 자산인 집이 더 가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화 논리로 보면 혈연공동체의 공유 자산인 가정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집에 집착한 나머지 가정의 가치에 소홀하다. 달리 말하면 재산가치에 골몰하는 바람에 문화로서 목적 가치를 잃고 사는 것이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말한다. 문화재청의 조직이나 정책을 보면, 무형문화재보다 유형문화재에 인력과 관심, 예산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구체적 반증이다.
모든 문화재는 무형문화 유산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주로 유형문화재를 다룬 책이다. 그럼에도 문화재 구조물의 설명보다 관련 전설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유형문화재가 지닌 무형문화로서 가치를 놓치지 않고 자세하게 서술한 까닭에 독자들의 주목도 널리 끌었다. 문화의 이치와 가치를 알기 때문에 유형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그와 관련된 무형의문화와 이야기에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이처럼 문화의 본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유형문화재를 다루어도 무형문화의 정보를 소중하게 주목한다. 최근에 세계적 추세에 따라 문화재 당국도 무형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에 골몰할 뿐 그 자체로 연구하고 보존하며 창조적으로 전승하는 데에는 유형문화재에 견주어 매우 소홀하다. 유형문화재를 잉태하고 낳고 기르는 문화의 어머니가 바로 무형문화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유형문화재를 위해서도 지금처럼 무형문화 유산을 홀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들의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것처럼 진정한 문화유산은 모두 무형문화에서 태어난 것이다. 국보든 보물이든 모든 유형문화재는 사실상 무형문화가 낳은 무형문화 유산이다.
문화재 일을 하는 정책입안자들이나 전문직 공직자들과 달리, 옛날 사람들은 유형문화를생산하는 무형문화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존중했다. 따라서 집을 한 채지어도 그 집을 짓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역할을 일일이 밝혀두었다. 위로는 도목수로부터 아래로는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하회마을 양진당 보수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을 보면, 집을 짓고 중수한 내력을 길게 적은 말미에 집을 지은 도목수와 목수의 이름은 물론, 집일을 거든 승려와 노비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대들보 위의 상량도리에 기록해 두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이 집을 지은 일꾼이자 주체이며 작가인 까닭이다. 집이 불타지 않는 한 그 기록은 집의 운명과 함께 간다. 그런데 지금 세태는 집을 누가, 왜, 어떻게 지었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집값이 얼마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까 하는 투자가치만 따진다. 문화의 가치보다 물질의 가격에 온통 넋을 빼앗기고 있다면 그것은 문화 인식이 아니라 경제 인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나 문화재의 이름으로 문화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성찰에 제대로 이르자면 무형문화가 없는 유형문화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을 절실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곧 문화가 없으면 문화재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가 바로 진정한 문화이다.
글˚임재해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민속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