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2013년 10월 - 한글미학 한글, 그 자체의 아름다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30 조회수 : 3910

 

 

가을 밤하늘은 유난히 맑고, 별들은 제각기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수많은 별들과 그 별들을 품고 있는, 끝없는 우주와 대면했을 때, 숨 막힐 듯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저 별들은 어떻게 제각기 다른 빛을 낼까. 우주 한 지점에 서서히 모인 기운이, 한 순간 계기를 맞아 “쾅”하고 굉음을 내며 태어난 푸른 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탄생을 상상해 봅니다. 별은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별이 왜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사람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저 별 중에는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는 별도 있고, 생명이 살 수 없는 별도 있다는 정도만 알 뿐입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에 조금 더 관심을 갖지만, 생명이 있다 없다만으로 그 별의 가치를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엉뚱하지만 문자의 생성이 별의 생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필요라는 기운이 모였고, 어떤 계기를 맞아 지구·별 여러 곳에서 문자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림 같은 문자, 부호 같은 문자. 곡선으로 된 문자, 직선으로 된 문자. 문자들은 마치 모든 별이 서로 다른 빛을 가지고 있듯이, 제각기 생성된 곳의 기운을 받아 서로 다른 생김새를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대부분의 문자는 별과 같이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삶에 필요했고, 인간 집단의 창작활동에 따른 결과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위한 창작 행위와 결과를 말합니다. 더 넓게는 그 행위에 대한 계획과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도 포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무언가 예쁘게 꾸미는 일로 여기지만, 그것은 결과로서의 디자인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한 부분입니다. 만약 어떤 물건이 ‘예쁘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그 물건을 ‘예쁘다’고 느끼도록 디자인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디자이너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밑바탕에 깔아두고 디자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는 과정을 이미 거친 것입니다. 관심과 배려가 디자인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서슴없이 한글을 가장 완벽한 디자인으로 꼽습니다. 탁월한 품성으로 한글을 디자인한 사람, 세종임금님. 문자가 본연의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배우기 쉬운 문자체계, 한글. 그 역할에 정합하도록 정제된 형태. 수직 수평 정원의 단순한 형태가 담백하면서도 힘 있고 강한 질감을 만들어 냅니다. 문뜩문뜩 디자이너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세종임금님과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한글처럼 탁월한 디자인을 하고 싶고, 기능에 정합하면서 개성이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별을 좋아하나요. 어떤 별빛이 아름다운가요. 어떤 사람은 그저 별빛이 예뻐서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과 인연이 있어서 좋아합니다. 또는 우리 인간에게 유용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 모든 별빛과 생김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밤하늘에 별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겠지요. 그래서 어떤 별이 더 아름다운지를 놓고 다투는 일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차라리 서로 다툴 시간에 한 번 더 밤하늘의 별빛을 감상하기를 권합니다. 문자는 어떨까요. 모든 문자는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집단 지성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숭고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문자의 생김새만을 놓고 어떤 문자가 더 아름다운지 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알파벳과 한자는 한글과 생김새가 다릅니다. 알파벳은 선을 질서 정연하게 그어놓은 듯한 질감이 있고, 한자는 마치 자연 풍경과 같이 자유로운 질감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부호같이 생긴 한글은 직선과 정원이 기계적인 선들을 만들어 내어 강하고 견고한, 극단적인 단순함에서 오는 차가운, 꾸미지 않은 담백한 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글은 심심할 정도입니다. 이게 한글 생김새의 개성이자, 멋입니다.


그렇다고 한글을 모두 직선과 곡선을 이용해 디자인한다면, 이 또한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더라도 획일화된다면, 마치 온통 숲만 있는 세상, 온통 바다만 있는 세상과 같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인접 문화와 교류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 내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붓으로 부드럽게 쓴 한글도 있고, 딱딱하게 그린 한글도 있어야 합니다. 잘 읽히는 한글이 있어야 하다면, 그림 같은 한글도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방법과 시도로 한글을 표현해야 한글 문화가 풍성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한글은 지구·별에서 가장 늦게 태어났지만 가장 배우기 쉬운, 탁월한 문자입니다. 아직 고유한 개성을 멋스럽게 충분히 자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한글의 멋진 개성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밤하늘의 다채로운 별빛을 즐기듯 각기 다른 질감의 문자들이 펼치는 개성과 멋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글˚이용제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