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겨울나기 ‘반식량’, 김장김치
가는 곳마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잔뜩 쌓아 두고 양념을 버물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야흐로 김장철이 돌아온 것이다.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손쉽게 김치를 구입해서 먹을 수도 있지만, 대량으로 담그는 김장김치는 아무래도 가족, 이웃과 함께 어울려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담아야 제맛이다. 기온이 떨어지는 늦가을부터 한국의 주부들은 으레 “김장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김장 몇 포기 담그세요?”, “배추 좋은 거 구입하셨네요.” 등 김장을 주제로 한 주부들의 소통은 12월까지 이어진다. 김장철은 두 달 남짓이지만 집집마다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대개 1년 동안 온갓 노력을 기울인다. 봄이면 김치의 염장과 발효를 위해 새우젓, 멸치젓 등 다양한 해산물 젓갈을 준비하고, 여름에는 천일염을 사서 2~3년간 보관하여 소금의 쓴맛을 없앤다. 늦여름에는 고운 빛깔의 맛있는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햇볕에 고추를 잘 말린다.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기 때문에 주부들이 재료준비에 기울이는 정성은 각별하다. 어디 그뿐인가. 김장하는 날을 정하기 위해 날씨 보도를 주의 깊게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김장하는 날의 날씨와 저장하는 온도가 김치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장을 어느 정도 할지, 누가 참여할지, 누구에게 얼마나 나눠줘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주부의 몫이다. 정부에서는 배추와 무 등 김장재료의 원활한 공급과 가격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 등 김장철이 되면 한국 사회 전반의 관심이 온통 김장에 집중된다. 이는 한국인에게 겨울을 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김장김치였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김장김치를 ‘반식량’이라고 일컬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과 ‘전통지식’을 나누는 김장철
한국에서 명절과 결혼식을 비롯한 집안의 대소사 이 외에 가족과 친척, 이웃이 모여 함께 일하는 대표적인 시기가 바로 ‘김장철’이다. 예전에 김장은 이웃 간의 품앗이로 이루어졌다. 각 집안마다 김장하는 날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여성들이 함께 모여 김치를 함께 담았다. 만약 전 해에 양념의 양 조절에 실패했거나 보관을 잘못하여 맛있는 김치를 먹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품앗이를 하는 여성들 간에 관련 지식을 충분히 주고받는다. 김장을 한 다음에는 반드시 이웃끼리 김치를 나눠서 맛본다. 김장에 동참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고 품평의 시간이다. 이처럼 김장을 통해 여성들은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전통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어울려 사는 ‘정’을 나누게 된다. 이처럼 공동체에게 김장은 매우 소중한 사회적 관습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가정뿐만 아니라 회사, 학교, 부녀자 모임 등 다양한 사회문화 공동체에서 김장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김장한 김치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다양한 행사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장, 세계인이 맛보는 나눔의 문화
외국인 거주자에게 김장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사회도 제법 많다.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김치이기에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써 김장에 참여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김장을 할 줄 알고 김치의 매운맛을 느낄 수 있는 외국인에게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김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이다. 유치원 때부터 가장 기본적인 종류의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이유도 김장에 담겨 있는 ‘정’, ‘전통지식’의 나눔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90%가 가족 또는 지인들과 김장을 할것이라거고 응답했다고 한다. 지역과 가정에 따라 김치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재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제도를 통해 이제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김장문화에 내재해 있는 나눔의 문화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예로부터 김장을 통해 나눔을 실천해 온 우리 문화의 저력 덕분이 아니겠는가.
글˚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