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 무한도전(정형돈&GD)의 인기곡 “해볼라고”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어떤 일의 시작에는 반드시 특정한 이유가 있다는 속뜻이 담겨있다. 이처럼 나의 월간문화재 사랑도 아는 척 좀 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대결해볼라꼬! 말이다.
- 우리 아버지께서는 역사에 상당히 흥미를 느끼시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서 역사에 관한 내용이 방영되면, 그것 보았느냐고 으레 아들에게 전화를 거시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퀴즈프로그램에서 역사 부분이 나올 때면, 항상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찾아보시곤 한다. 아직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아버지의 모든 질문공세를 이겨낼 수 가 없었다. 아버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면박을 당하는 게 싫었던 나는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할 실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월간문화재를 알게 되었고, 월간문화재는 아버지의 질문공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가 되었다.
- 월간문화재의 애독자였던 아버지는 월간문화재를 보고 난 뒤, 그 내용들에 대해서 더 찾아보고 나에게 질문을 하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월간문화재 2012년 1월호부터 하나하나 정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역사 실력은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었고, 아버지도 흡족해하시는 듯 보였다.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역사문제로 힘겨워하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만족해가던 어느 날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교제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아버지께서 여자친구와 식사자리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와 여자친구는 함께 우리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려나 보다’했건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A4용지 2장을 내미셨다. 그 2장의 종이의 맨 위에는 “연애고사 -전통혼례편-”이라고 적혀있었고 그 아래에는 각종 객관식, 주관식 문제가 담겨있었다. 나와 여자친구는 아는 것을 쥐어짜 끼적거리긴 했으나,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말았다. 아버지께서는 “으이구 잘한다, 이놈들아. 영화보고 커피마실 시간 있으면, 이런 거라도 더 알아봐라! 커서 뭐할라꼬 이런 것도 모르노? 으잉? 다 치우고 나가삐라!”라며 호통을 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월간문화재 8월호를 살폈다. 전통혼례에 대한 부분이라 한 번 훑어보고 말았었는데, 이것을 나와 여자친구를 불러 자세하게 문제로 만들어 괴롭힐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러나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와 여자친구가 이 시험에서 90점을 받을 때까지 교제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나와 여자친구는 월간문화재 8월호 전통혼례 부분을 종이가 닳도록 외우고 또 외웠다. 수능 영단어를 외우듯 암기하고 또 암기하고 나서야 아버지의 시험문제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91점을 받은 나와 달리, 여자친구는 아버지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99점이라는 고득점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고 말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이제야 한 시름 덜겠구나.”하고 안심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내주셨다. 아버지는 우리 둘을 앉히시고는 “내 아직 느그들 둘 인정한 게 아니니까, 일단 전통혼례하는 거를 직접 갔다 와바라. 그라고 나서 체험보고서 작성하면 그때 둘이 사귀는 거 생각해 보꾸마.”라고 말씀하시며 교통비 5만 원까지 쥐여주셨다. 돈까지 받은 이상 안 갈 수도 없었기에, 편하게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명령하신 답사를 떠났다. 우리의 답사 장소는 공주 한옥마을로 정했다. 때를 잘 맞춰 간 탓에 다른 분들이 전통혼례식을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과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시험 덕분에 쌓인 배경지식으로 나와 여자친구는 전통혼례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우리가 직접 전통혼례를 체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옆에 있는 법당에서 맑은 물 한 사발 떠놓고, 혼례를 올리는 과정을 체험해보았다. 해설사 선생님께서는 주로 돈이 없는 서민들이 행했던 방법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렇게 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형식으로 구성된 보고서와 사진을 아버지께 제출했다. 아버지는 흡족해하시고는 우리의 교제를 정식으로 인정해주셨다. 무려 1년 만의 일이었다.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이라니까네. 느그들 요새 새로 나오는 스마트폰이고 뭐고 다 좋다 그래. 그래도 이 자슥들아 우리 것을 먼저 알고 나서 배워야 할끼다. 알았나?”라고 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요즘도 계속 월간문화재를 틈틈이 읽으시며 나를 괴롭히고 계신다. 물론 나도 그에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 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께 대들어보려고 행했던 나의 역사 공부는 이제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께 혼나지 않기 위해 펼쳤던 월간문화재가 이제는 나를 이끌어 주는 삶의 지표가 되기까지, 참 재미나는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월간문화재는 단순한 책이 아니다. 나를 가르쳐주고 바로잡아주는 나의 소중한 동반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월간문화재와 함께 외친다. “내도 아부지처럼 역사 공부 쫌 해볼라꼬~♥”

- 김재휘 님 (대전광역시 동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