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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서양 기하학과 천문학이 담긴 『황도남북양총성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11-10 조회수 : 5044
서양 기하학과 천문학이 담긴 『황도남북양총성도』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가면 보물 제848호로 지정된 대형 천문도 한 점을 유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이 천문도는 높이가 183cm, 폭이 451cm인 거대한 8폭 천문도 병풍이다. 이 천문도에는 천구를 북반구와 남반구로 나누어 3,083개의 별을 그린 성도가 있다. 1756년 청나라에서 출간된 『흠정의상고성』에도 이와 같은 수의 별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성도는 평사도법(stereographic projection)으로 그렸다. 평사도법이란 천구의 표면에 있는 대상을 2차원 평면에 투영하는 방식의 한 가지이다. 천구의 한 극에 광원이 있고, 그 반대편 극에 한 평면이 접해 있을 때, 그 광원에서 나온 빛으로 천구면의 대상을 평면에 투영하는 도법이다. 평사도법의 특징은 구면에 있는 어떤 원이라도 모두 찌그러지지 않고 평면에 원으로 투영된다는 것이다. 즉 구면에 있는 어떤 형태는 위치에 따라 그 크기는 변할지라도 그 모양은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아폴로니우스(Appollonius, 262 BC- 190 BC 경)가 지은 『원뿔곡선』이란 매우 유명한 책에 나온다. 원뿔을 다양한 각도로 자를 때 그 단면의 모양은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되는데, 그 곡선을 원뿔곡선 또는 원추곡선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철저히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원뿔곡선과 관계된 다양한 정리들을 증명하고 있다.

명나라 말 중국에 파견된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천문학을 발판으로 중국에 선교를 해보려고 하였다. 그들은 명나라 말기에 『숭정역서』란 역법을 만들었으나 명나라가 곧 망하는 바람에 반포되지 못하였다. 아담 샬은 이 역법을 청나라의 공식 역법으로 채택하도록 노력했다. 그 이름을 『서양신법역서』로 바꾸고, 이 역법으로 해마다 책력을 작성하니 이것이 시헌력이며, 10년쯤 뒤에는 조선에서도 시행되었다. 이 『서양신법역서』에는 평사도법의 기하학적 증명이 공리체계를 동원하여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그 증명을 일상적인 언어로 서술해 놓기도 하였으며, 더욱 흥미롭게도 이러한 정리를 이용해 성도를 작성하는 실무적인 작도법이 설명되어 있다.

『법주사 황도남북양총성도』의 원도는 청나라에서 예수회 선교사로 활약하던 쾨글러(1680-1746)가 1723년에 작성한 『황도총성도』인데, 그 정식 이름은 『황도남북양총성도』이다. 이 천문도는 모기(Moggi)라는 선교사가 동판인쇄술을 사용하여 인쇄해낸 것이다. 크기는 가로 63cm, 세로 39cm인데, 세계의 몇몇 유수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내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한 점이 소장되어 있고, 개인이 한 점 소장하고 있다.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의 기록을 종합하면, 조선 영조 17년인 1741년 말에 북경으로 출발한 관상감 천문학자 안국린(安國麟)이 이듬해인 영조 18년 1742년에 귀국할 때, 이 『황도총성도』를 들여왔다. 1742년 11월 22일에 작은 성도를 큰 병풍으로 제작하기로 하였으나 이 일을 맡아야 할 안국린이 귀국 직후 병사해, 그 사촌 형인 안국빈(安國賓)이 제작을 담당하여 이듬해인 1743년 상반기에 완성하였다. 이 천문도가 바로 『법주사 황도남북양총성도』이다.
 
『법주사 황도남북양총성도』. 보물 제848호. 이 천문도의 원도는 1723년 청나라 흠천감의 쾨글러가 제작한 『황도총성도』이다. 1742년 안국린(安國麟) 구입해 온 것을 바탕으로 그 사촌 형인 안국빈(安國賓)이 맡아 1743년에 커다란 병풍으로 제작한 것이다. 총 3,084개의 별과 기(氣)가 그려져 있다. 평사도법으로 그려진 성도는 전통적인 중국식 도법과는 다른 것이다. 또한 칠정도(七政圖)에는 해와 달과 오행성을 천체망원경으로 본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구법천문도』는 구법(舊法)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신법(新法) 천문도인 『황도남북양총성도』를 함께 그려놓은 커다란 병풍천문도이다. 『법주사 황도남북양총성도』가 쾨글러의 『황도총성도』를 그대로 모사하였다면, 『신구법천문도』의 『황도남북양총성도』는 증성(增星)을 제외한 나머지만을 그렸다. 다시 말해서, 중국 전통의 별자리와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별 중에서 별자리를 이루지 않는 별들은 삭제하였다는 말이다.

현재 이 천문도는 전 세계적으로 네 점이 알려져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휘플 과학사 박물관에 한 점, 일본의 국회도서관은 일본초기의 과학사학자인 신죠 신조(新城新藏, 1873-1938)가 수집한 것을 1943년에 구입하여 한 점을 소장하고 있고, 오사카의 남만문화관(南蠻文化館)에 한 점이 있으며, 한국 국립민속박물관이 1994년에 구입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최근 보물 제1318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신구법천문도』의 복제품으로 보이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점 있고, 민간에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천문도에는 『신제영대의상지(新製靈臺儀象志)』와 『흠정의상고성(欽定儀象考成)』이 인용되어 있다. 『영대의상지』는 1674년에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 즉 중국 이름으로는 남회인(南懷仁)이라 부르던 예수회 선교사가 출간하였고, 1709년에는 조선에 수입되었다. 그리고 『흠정의상고성』은 1744년을 역원으로 하고 있으나, 1756년에 쾨글러에 의해 청나라에서 출간되어 1766년에 조선에 도입되었다.

따라서 1766년 이후에 『신구법천문도』들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법 천문도가 조선에 처음 수입된 것은 1631년의 일로 정두원이 유럽인 로드리게스(Rodrigues)로부터 받아온 『천문도남북극』양 폭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담 샬(중국명 탕약망)이 제작한 『적도남북양총성도』임이 분명한데, 이 천문도는 목판 인쇄본으로 제작되었다. 그러한 인쇄본은 현재 파리의 국가도서관과 바티칸 도서관에 남아 있다. 이 천문도는 커다란 병풍으로 제작되었으며, 명나라 때제작된 것은 『항성병장(恒星屛障)』이란 이름으로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청나라 때 고쳐 제작한 병풍은 『순치 탕약망 항성병장 개판본(順治 湯若望 恒星屛障 改版本)』이란 이름으로 현재 중국 제일 역사당안관(歷史檔案館)이 소장하고 있다. 이러한 신법 천문도들은 유럽 문명과 동아시아 문명권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며, 그 도법에 사용된 기하학적 사고,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별, 성운과 성단과 같은 근대 천문학의 발견, 그리고 망원경으로 관찰한 행성들의 모습 등 새로운 지식을 다채롭게담고 있다. 이를 매개로 동서 지식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지식이 조선 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 글˚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