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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오늘날 중등학교에서는 고전으로 춘향 이야기를 학습하고 있다. 많은 경우 소설인 『열녀춘향수절가』의 한 단락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제목에서 ‘가(歌)’라고 표시한 바와 같이 판소리로 구연(口演)됨을 전제로 하여 편찬되었지만, 19세기 말엽 판각(板刻) 인쇄되어 소설로 널리 보급되면서 춘향전의 대표소설 격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열녀춘향수절가』는 전주(全州) 지역에서 판각되어 완판본(完板本)이라 한다. 그런데 이의 전신으로 19세기 중반 완판본 『별춘향전』과, 또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판각된 경판(京板) 『춘향전』, 그리고 안성판(安城板) 『춘향전』도 역시 인쇄되어 널리 보급되었었다. 하지만 이들 춘향전이 『열녀춘향수절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내용 표현에 있어서 아름다운 수사(修辭)며 많은 고사(故事)나 시구(詩句)를 구사하여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면에서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열녀춘향수절가』의 내용을 끝까지 읽어 공부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명창 여러분이 공연하는 춘향가를 감상해보면 ‘쑥대머리’나 ‘오리정 이별’ 같은 대목이 있는데, 『열녀춘향수절가』에는 왜 이 대목이 없느냐고 의문을 표시한다. 이 의문에 답하기 앞서 판소리의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공연 예술로서의 판소리는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많은 종류의 이야기로 형성되어 구연(口演) 되다가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가인(歌人) 신재효(申在孝)에 의하여 일대 전기(轉機)를 맞는다. 신재효는 당시까지 열서너 마당의 판소리 대상 이야기를 추려서, 춘향가・심청가・흥부가・수궁가・적벽가・가루지기타령 등 6편으로 제한하여 사설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오늘날 가루지기타령을 제외한 다섯 마당을 감상하는 기틀이 여기에서 마련되었다.
이 중에서 춘향가는 19세기 말엽에 위에서 언급한 판각본 『열녀춘향수절가』와 20세기 초엽에 신소설 작가 이해조(李海朝)의 활자본 『옥중화(獄中花)』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여 인쇄된 책으로 보급되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체제상으로 볼 때 『열녀춘향수절가』는 고소설 형식이고, 신재효 본 사설이나 『옥중화』는 신소설 형태이다. 그래서 판소리를 구연하는 명창 여러분이 형태는 신재효 본이나 『옥중화』를 근간(根幹)으로 하면서 『열녀춘향수절가』의 내용을 많이 끌어와 자신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설을 만들어 구연했다. 이 과정에서 한 대목을 첨가하거나 어떤 대목을 삭제하여 명창 자신만의 바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오리정 이별’ 대목은 신재효 본에 등장하지만, 뒤에 나온 『열녀춘향수절가』에서는 빠져 있다.
오늘날 구연되고 있는 김세종 바디에서도 이 대목을 삭제했는데, 뒤에 이루어진 김소희 바디에서는 다시 ‘오리정 이별’ 대목을 삽입했다.
‘쑥대머리’는 옥중의 슬픔을 나타낸 대목으로 신재효 본이나 『열녀춘향수절가』, 『옥중화』 등 에는 이 용어가 없는데 근세 임방울 명창의 더늠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향 이야기에는 기본적으로 유의해야할 특이한 내용이 몇 가지 있다. 그 첫째는 춘향의 신분문제로, 19세기 중반까지는 춘향 신분을 완전한 기생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전해지는 춘향가 관련 최고 기록인 ‘만화본춘향전(晩華本春香傳)’은 물론, 완판 『별춘향전』, 경판과 안성판 『춘향전』 모두 기생 춘향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신재효에 의해, 춘향 어미는 기생이었지만 퇴기이고, 부친은 무관인 천총(千總; 正三品) 벼슬에 있는 양반이며 기적(妓籍)에 올린 바 없는 춘향으로 바뀌었다. 이어 『열녀춘향수절가』에서 다시 부친이 문관 양반인 참판(參判; 從二品)으로 설정되어, 뒷날 모든 춘향 관계 소설과 춘향가에서 퇴기 월매와 참판 사이에서 출생한, 기생 아닌 춘향으로 고정되었다.
이와 같이 춘향을 기적(妓籍)에 올리지 않은 양민으로 바꾸어야 하는 데에는 당시 사회의 도덕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남편을 위해 절개를 지킨 대가로 뒷날 정렬부인에 봉해지고, 양반 고관대작 집안의 안방마님이 되는 데에 있어서, 지난날 여러 남자를 접한 기생이었다는 오명(汚名)을 씻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분만 고쳐놓고 이전에 구성했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하다 보니, 몇 가지 모순점이 노출되었다. 광한루에서 이 도령의 부름에 춘향이 기생이었을 때에는 가서 만나도 자연스러웠는데, 이제 숫처녀로 총각의 부름에 어찌 그 사방이 트인 광한루에 갈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 있었고, 또 이 도령과 이별할 때에 어찌 어린 신부가 그 넓은 오리정 근처 숲속으로 술을 가지고 가서 큰소리로 울며 이별할 수 있느냐고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 결과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바디 상호간에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혼란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다음 두 번째 갈등은 이 도령이 서울로 올라가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내려오는 기간의 문제이다. 위에서 언급한 3가지의 춘향전에서는 모두 서울로 올라간 이듬해에 어사가 되어 내려 오는 것으로 설정하여, 그 기간이 너무 짧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20세도 안된 상태로 급제하여 바로 암행어사가 되는 일은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명창의 사설에서는 이 문제점을 고려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다음에 어사 되어 내려오는 것으로 고쳐 놓았다. 그런데 춘향의 편지에는 여전히 작년에 이별한 것으로 되어 있고, 춘향의 옥중 생활 역시 그렇게 긴 기간으로 볼 수 없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설명할 것이 있으니, 이 도령에게 너무 냉정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도령이 남원에 내려와 춘향에게 잠시 내일 어사출두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일러주었으면 좋았지 않느냐 하는 견해와, 출두 후 춘향에게 어사의 수청도 거부하겠느냐고 놀림 비슷한 말을 한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암행어사는 출두 전에 어떤 경우도 자신이 미리 누설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지켜야만 했다. 이것을 어기면 문초를 받게 되고 암행어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 된다. 또 춘향 쪽으로 보면 춘향을 높게 출세시키는 입장에서 고찰할 때, 지금까지는 이 도령이 출세하여 구제해 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 모든 고초를 참아왔다고 해석할 수가 있다. 만약에 이 도령에 대한 희망이 영원히 사라진 상태, 즉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의 유일한 길은 어사의 도움뿐인 상태에서도, 그의 수청을 거부하고 희망 없는 이 도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여자이냐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 상황을 확인하고서 임금에게 고했기 때문에, 임금이 파격적으로 미천한 신분인 춘향을 고관대작의 지위로 올려놓는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취했을 때 경향 각지에서 열렬하게 환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였었다. 결혼 전에 첩을 두어도 사당참배를 거부당하고 족보에서 이름을 지워버리는 조선시대 도덕률을 감안할 때 이 도령을 결코 무정한 사람이라고 탓할 수가 없다.
춘향가는 고전 작품이다. 고전을 감상할 때에는 그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서 감상해야 하고, 우리의 감흥도 고전으로서의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훈련되어야만 한다.
- 글 김현룡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