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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우리가 어디를 출입하든 문을 통과해야 한다. 집과 교실, 사무실, 심지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문을 이용한다. 그뿐 아니
라 문은 복과 액운이 드나드는 ‘통로’다. 죽은 이의 영도 문을 통해 드나든다고 믿어서 제사 때 혼령이 들어올 수 있도록 불을 켜고 문을 열어둔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끝맺을 때도 문이 등장한다. 장사를 시작할 때 ‘문을 연다’는 표현을 쓰고, 폐업했을 때 ‘문을 닫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문은 우리 생활에서 다양한 상징성을 갖는 중요한 존재다. 우리 조상들이 문을 신성하게 여기고 여러 종류의 지킴이를 문 앞에 세워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나무 가지는 그러한 지킴이 중 하나다. 가시가 촘촘히돋아 있는 엄나무 가지를 보고 잡귀가 겁을 먹고 달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아둔 것이다. 서해안 일대에서는 범게를 지킴이로 쓴다. 범게는 집게다리 힘이 뛰어난데 집에 들어오려는 잡귀를 집게다리로 꼭 붙잡아 쫓아버리라는 의미로 통한다. 보통 산 채로 매달았다가 죽은 후에도 그대로 둔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수호 동물 호랑이의 뼈를 구해서 매달아두는집도 있다. 잡귀가 문을 넘지 못하게 하려는 염원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간다.
문에 물건을 달아두는 것 외에도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붙인 경우도 있다. 호랑이 뼈 대신 ‘虎’ 자를 쓰거나, 붉은 글씨로 쓴 부적을 붙이는 풍습이 바로 액막이의 대표적인 사례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문 앞에 뿌리는 것도 잡귀를 쫓기 위한 민가의 의식이다. 귀신이 팥죽의 붉은색을 싫어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으로, 부적 역시 붉은색의 기운을 이용해 귀신을 쫓으려는 의도로 써 붙이는 것이다.
문을 중요시한 만큼 문지방 또한 성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문턱이 나와 남, 안과 밖, 일의 성패를 가르는 경계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문턱을 밟는 것은 신성한 영역을 침범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문지방 관련 여러 속설이 생겨난 것이다. 농가에서는 요즘도 문지방에 앉으면 논둑이 무너진다거나, 임산부가 걸터 앉으면 아이에게 변고가 생긴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참고문헌. <우리 생활 100년 집> 김광언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