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행해진 이 놀이는 지역과 마을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으나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춤과 노래 가사, 놀이의 구성 등에 약간씩차이가 존재한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행해지는 것은 진도와 해남우수영 강강술래가 혼합된 것이다.
강강술래의 어원과 관련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학계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했지만 특별히 힘을 얻는 유력한 학설은 없는 실정이다.
강강술래 놀이 자체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원과는 달리 상당히 힘을 얻고 있는 주장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삼국지> 위지동이전 마한조의 제사 기록이다. 기록에 따르면 5월에 씨를 뿌린 후 귀신에게 제를 올리는데 그때 수십 명의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춤추고 술을 마셨다는 풍습이 있다. 바로 이것이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 첫 번째 가설이다. 두 번째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강강술래를 전술의 하나로 활용한 것이 기원이라는 가설이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왜군의 전선은 350여 척, 이순신 장군이 거느린 전선은 12척으로 조선 수군의 전력은 왜군의 3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지역의 여인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명씩 손을 잡고 산봉우리를 돌게 하였다. 멀리서 지켜보는 왜군의 눈에 수십만 대군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 이 전술이 바로 강강술래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다.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처럼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이 놀이는 자연스럽게 사교의 장으로 기능했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에는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연애의 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어울릴수록 더욱 흥이 나는 것이라 행해진 시기도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명절 언저리가 주가 되었다. 정월 보름, 칠월 백중, 팔월 추석이 대표적으로 강강술래가 성행된 시기인데, 특히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날 밤에 대대적으로 판을 벌이고 놀았다.
참고문헌.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