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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문화유산 활용의 답, 궁중문화축전
‘오늘, 궁을 만나다’. 궁중문화축전의 주제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이 주제는 축전을 관통하는 슬로건이다. 필자가 기사를 통해 처음 접하였을때, 이 타이틀은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마치 국립극장에서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였다. 성공예감이다. 독창성과 차별성이 명징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국가 차원의 공연예술 문화교류의 장을 마련한 대단위 국제공연예술축제였다. 이 축제들의 공통점 중하나는 브랜드 창출 기반이 탄탄하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주제의식이 선명하다. 성공한 축제들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궁중문화축전의 장소는 궁궐이다.
시대를 담는 그릇인 건축의 활용 가치를 궁에서 발견하여 이를 극대화하였다. 단순히 유형유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형유산과의 결합을 통해 상승작용을 도모한다는 것이 이 축제의 근간이다. 문화재청에서 시작한 2009년 ‘살아 숨 쉬는 4대궁궐·종묘 만들기’ 사업을 계기로 문화유산의 활용 정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궁중문화축전의지향점 중 하나가 바로 ‘살아 숨 쉬는 궁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장 인상 깊은 방문지로 ‘명동’과 ‘고궁’이 매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궁을 이용한 문화유산의 활용 사업은 수요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궁은 역사성이 내재되어 있어 대한민국 역사문화관광 랜드 마크land mark로 더할 나위 없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표 프로그램의 부각
궁중문화축전의 주최는 문화재청이다. 주관은 한국문화재재단이 맡고 있다. 중앙행정기관과 산하 공공기관이 주축이 되어 시행하는 공공성이 큰 문화축제이다. 그간의 경과를 소략하면 다음과 같다. 제1회 축전은 2014년 9월의 시범사업을 발판 삼아 2015년 5월 1~10일에 시행되었다. 34개 프로그램에 24만 명이 참여하였다. 지난해 제2회 축전은 ‘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이루어졌다. 내외국인 45만 명이 참가하여 열기를 고조시켰다.
역시 궁궐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33개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올해 제3회 축전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표 프로그램의 운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택과 집중이다. 대표 프로그램은 기존 주제를 견지하되 1897년의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강조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운영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시의성을 적극 반영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축제의 집중도와 확장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요소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프로그래밍의 의미는 새로운 실험적 시도보다는 기존의 콘텐츠들에서 우수한 프로그램들을 질적으로 고양시켜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를 극장 경영으로 치환하자면, 양질의 콘텐츠를 발전시켜 대표 콘텐츠로 발전시킨다는 전략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 점은 여타의 축제 기획에서 볼 수 없는 양상이다. 1·2회를 통해 검증된 관객들의 반응, 축제의
성과 및 문제점 등을 점검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는 축제의 환류 장치로써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4월 28일 경복궁 개막제를 시작으로 5월 7일까지 진행된 이번 축제는 궁중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다. 크게 공연·의례·체험·전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른 유형별 축제 프로그램을 살펴보기 전에 대표 프로그램인 ‘대한제국을 만나다’의 주요 프로그램과 그 의의를 간단히 진단해 본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덕수궁에서의 ‘대한제국황제 즉위식’ <대한의 꿈>,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대한제국 음악회’, ‘대한제국과 가배차’ 등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의 ‘대한제국실 상설전시’, 창경궁에서의 ‘야외궁중극’ <고종, 여명의 빛을 찾아서>도 주목을 끌었다. ‘대한제국’과 ‘서구화’라는 키워드로 장소성을 특정화한 덕수궁을 주 장소로 설정한 것은 성공률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대한제국 수립의 무대로 황궁인 덕수궁은 여러 프로그램들을 근대로의 시간여행으로 만족스럽게 이끌어 주었다.
궁에 물든 대한민국의 5월
이번 축제의 유형별 프로그램들과 그 의미를 탐색해 보면 다음과 같다.
축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연의 경우 덕수궁 중화문에서의 ‘대한제국 음악회’, 덕수궁 석조전 앞뜰에서의 ‘무형문화유산 공연’ <백희가무>, 경복궁 경회루에서의 ‘경회루 야간음악회’, 경복궁 수정전에서의 ‘고궁음악회’, 경복궁 ‘수정전 해금공연’, 종묘 정전에서의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창경궁 문정전에서의 ‘야외 궁중극’ <고종, 여명의 빛을 찾아서> 등이다. 5월 5일 필자가 관람한 ‘대한제국 음악회’는 박승희의 지휘, 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스트링이 결합된 오케스트라 아리랑의 연주, 신정혜의 사회로
10여 개의 연주곡들을 통해 현대적 전통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궁에 물든 5월의 밤이었다. 또한 조선시대 연회를 베풀던 곳이자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회루에서의 음악회는 그 자체로 궁의 주빈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하였다. 5월 7일 무대에서는 박애리의 사회로 국립국악원 예술단이 <오얏꽃 피울 적에>라는 공연을 하였다. 궁중문화축전과 가장 잘 호응되는 국립국악원의 무대는 역시나 축제의 품격을 더하였다. 다른 날의 공연인 한국문화재재단예술단의 <연향 ‘심청’>, KBS국악관현악단의 <국악, 시대를 노래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사람과 풍경의 변주>등은 경회루 음악회의 다채로움을 더한 무대로 손색이 없었다. 경복궁 수정전에서는 해금주자 신날새·꽃별 등 해금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기업의 후원을 통해 <왕후의 연회>라는 해금특별공연이 진행된 것은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확산되어 이 축전에서 더욱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연계되면 행사의 풍성함이 더해질 것으로 본다. 덕수궁 석조전 분수대 특별무대에서의 <백희가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판소리·무용·경기민요·탈춤 등 국내무형문화유산과 베트남 ‘냐낙공연단’이 선보인 해외무형문화유산 무대는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음악을 통해 고양시켰다.

축전 공연의 대부분은 음악회이다. 이 속에서 창경궁에서의 <고종, 여명의 빛을 찾아서>는 극을 통해 고종의 간절한 열망의 목소리를 잘 풀어냈다. 극단 집현에서 제작하였다. 필자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었다. 축전의 가장 큰 요소인 장소성이 빛을 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의례이다.
궁중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궁중의례는 축전의 정체성을 더욱 부각시켜주었다. 의례의 포문은 <대한의 꿈>이 열었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대표성과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한제국 황제 즉위식’은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어 자주독립국가임을 재천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를 오늘날에 재조명함으로써 축전이 표방하는 궁과 궁중문화의 역사성을
담아내는 계기가 되었다. 덕수궁 정관헌에서 고종황제와 외국공사 간에 이뤄진 외교적 접견을 재현한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극형식으로 재현한 접견례는 의례와 연회로 구성된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의례 진행자 최태성의 구수한 진행에 참가자들은 무장해제되고, 한성외국어학교 학생이 되어 접견례를 참관한다. 미국·프랑스·영국 공사의 순서대로 접견이 이루어진다. 이후 외국공사들을 위한 연회가 재현된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코너이다. 교실 밖 역사교실을 궁에서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의례의 중심지는 종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대제’, 종묘에서 여성이 참여하는 유일한 의례인 ‘종묘 묘현례’가 있다. 왕실 의례 가운데 가장 성대한 ‘종묘대제’는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궁중문화의 정수를 십분 느낄 수 있다. 이와 어우러진 ‘종묘제례악’과 ‘일무’ 또한 의식의 장엄함을 너머 숭고함마저 전달한다. 국가제례의 장소적 특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복궁에서의 ‘세종대왕자 태실 태봉안의식’(조선시대 왕자가 태어날 때 거행한 의식), 창경궁 일원에서의 ‘영조와 창경궁’ 또한 궁중의 문화를 친근감 있게 전달해 준다.
오늘도 궁을 말하다
궁중문화축전은 경복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종묘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궁중문화와 밀착시켜 문화유산의 활용가치를 높인다. 특히 올해는 축제의 주제를 기반으로 하되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한 대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한 것이 인상적이다. 궁중문화축전은 고궁이라는 유형유산이 궁중문화 콘텐츠라는 무형유산을 통해 증폭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궁중건축, 궁중의례, 궁중의상, 궁중음식, 궁중음악, 궁중무용, 궁중연향 등 다양한 궁중문화가 궁을 통해 수용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학자 신명호의 말처럼 궁중문화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화자원이자 중요한 콘텐츠이다. 이를 실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궁중문화축전이다. 내년 5월이 벌써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