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백담사 일주문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내설악에 위치한 사찰이 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한 계사가 그 기원을 이루고 있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를 입 으면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등으로 개칭되어 오다가 1455년(조선 세조 원년)에 중건하면서 백담사로 명명되 었다. 이 사찰에는 만해 한용운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과 『불교유신론』을 집필하였고,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 내 외가 이 절에 은거하기도 하였다.
백담사(百潭社)라는 이름은 “100개의 웅덩이(潭)와 관련 있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이름과 관련된 다음과 같 은 설화가 전하여진다. 이 사찰은 화재가 많았는데, 화재 때마다 주지 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사람이 나 타나 변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 을 고쳐 보려고 하던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의 웅덩이(潭)를 세어 보라고 해서 이튿날 세어 보니 꼭 100개에 달하였다. 그래서 이 름을 백담사로 바꾸고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그 후로는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의 경내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일주문이라는 말은 2개의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누구든지 이 일주문 에 들어오면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一心)이 되 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담사 일주문은 2개의 경사지붕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또 한 2개의 기둥이 커다란 지붕을 떠받치기 위하여 기둥을 연결하는 보에 여러 개의 포(包)를 얹은 다포(多包) 양식 이다.
강릉 선교장
선교장(船橋莊)은 경포호 인근인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해 있는 99칸의 대표적 조선조 사대부가의 주택이다. 효령대 군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졌고 10 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포호가 지 금보다 넓었을 때 ‘배 타고 건넌다’고 하여 이 마을을 배다 리 마을[船橋里]라 불렀는데, 선교장은 여기서 지어진 이 름이다. 안채, 열화당, 행랑채, 동별당, 서별당, 활래정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30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후 손들이 거주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전통가옥이다.
선교장 정면 우측에는 넓은 연못 위에 돌기둥으로 지 지되고 있는 ㄱ자 형태의 활래정(活來亭)이 눈길을 끈다. 옛 선비들은 이 활래정에 앉아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 관을 바라보는 풍류를 즐겼다. 특히 활래정의 현판은 이곳 을 들렀던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글씨로 바뀌곤 하 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쓴 현판 이다. 배경이 되고 있는 뒤쪽 야산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 는 노송 숲은 옆으로 길게 드리워진 선교장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켜 준다. 이 아름다움으로 KBS에서는 지난 2000년 20세기 한국 TOP 10 중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한 바 있다.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
양양의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한 의상대는 신라시대 의상 대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 자리 에서 산세를 살피고 좌선을 하던 곳이다. 훗날 이곳에 정 자를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부르게 되었다. 이 의상대는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혀 많은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지금도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이 정자에서의 해돋이는 가히 일품이어서 매년 새해 첫 날이면 해돋이를 관조하려는 인파로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자 옆으로 온갖 해풍을 견디며 자라난 몇 그루의 해 송과 정자의 인공미는 저 멀리 수평선과 더불어 멋진 풍 경화를 만들어 낸다. 낙산사의 또 다른 명물인 홍련암(紅 蓮庵)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의상대 쪽을 바라보면 정면에 서 볼 수 없던 절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림은 홍련암 쪽 계 단에서 의상대를 바라본 해안가 풍경이다. 홍련암에는 다 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여진다. 의상대사가 좌선한 지 7일 째 되는 날 바닷속에서 갑자기 홍련이 솟아오르더니 그 홍 련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의상이 마음속에 품고 있 던 소원을 기원하자 만사가 뜻대로 이루어져 그는 이곳에 암자를 짓고 이름을 홍련암이라 하였다 한다. 지붕의 모습 은 정면이 人자 모양의 팔작지붕이고 뒤쪽은 바위와 벽 사 이가 좁아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주출입구가 있는 쪽이 통상 건물의 정면이나 바위 위에 놓이다 보니 전면으로 공 간의 여유가 없어 측면으로 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암자는 큰 바위 사이에 건물이 놓여 건물 내부 바닥에 마련된 조그만 유리 구멍을 통해 그 아래로 바위 사이를 드나드는 힘찬 파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은 의상대 에서 홍련암 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죽서루(竹西樓)
죽서루는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오십천 동 쪽 절벽 위에 위치해 있는 누각이다. 아름답기가 뛰어나 관동팔경 중 제1경에 꼽힌다. 이 때문에 죽서루는 예로부 터 시인 묵객들의 정신수양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애용되 어 왔다. 죽서루 앞에 있는 오십천은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오십천’ 이란 이름은 그 발원지에서 동해까지 50여 번 돌아 흐른 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장기 간에 걸친 침식과 퇴적작용으로 현재는 병풍과 같은 지형 을 만들어 냈다. 죽서루는 이 오십천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절벽과 푸른 물, 그리고 수림대가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다. 죽서루의 동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오랜 옛날 그 대나무 숲속에는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죽장사의 서쪽에 위치한 누각이어서 죽 서루로 명명되었다 한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인 죽서루는 고려시대인 1275년(충렬왕 원년) 이승휴(李 承休)가 창건하였다. 현재의 모습은 1403년(조선 태종 3) 에 김효손(金孝孫)의 중수를 거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의 수리를 이어온 모습이다. 정면은 원래 5칸이었던 것을 좌우로 1칸씩 늘린 것으로 보이는데, 양 끝단의 공포가 가 운데 공포들에 비하여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바위 위에 놓인 기둥들은 바위의 생김새에 따라 길이 를 달리하고 밑면이 다듬어져(그랭이질) 자연미를 숭상하 던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십천 건 너편에서 죽서루가 보여주는 빼어난 아름다움은 왜 이곳 이 관동팔경의 제1경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