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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미국의 포크 록 듀오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1970년에 발표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20세기를 대표하는 팝송의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언젠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을 100등까지 선정하여 들려주는 FM라디오의 연말 특집 방송에서도 이 노래가 6등을 차지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도 호소력이 강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순위에서 1등부터 5등을 차지한 노래 가운데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의 음악적 수준과 그런 대로 비교할 수 있는 노래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와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데…. 다른 세 곡은 아바, 이글스, 엘튼 존의 노래였다. 이것도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팝송뿐 아니라 가요조차도 대충 흥얼거리면서도 가사의 내용을 자세히 음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런대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온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의 가사를 최근 한 줄 한 줄 되새겨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자 재미있게도 대표적인 불교경전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구절이 곧바로 연상되는 것이었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당신이 지치고 초라하다고 느껴 눈물이 고일 때 내가 그 눈물을 닦아주겠다. 힘들고 친구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당신의 편이 되겠다’고 위로한다. 그러면서 ‘내가 세상의 풍파에도 버틸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겠다’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런 분이다. ‘관세음보살보문품’은 백천만억 중생이 온갖 고통과 고뇌에 시달릴 때 관세음보살이 있음을 듣고 한마음으로 이름을 부르면 모두를 고통에서 풀려나게 해준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가르침을 알 길 없고, 해탈에 이르기는 더더욱 어려운 중생이라도 그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마음을 모아 부르기만 하면 구원해준다. 큰 바다에 들어선 배에 태풍이 몰아닥쳤을 때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존재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우리 말 의역(意譯)이 굳어진 듯하지만, ‘troubled water’란 ‘법화경’ 구절 그대로 큰 바다에 들어선 배에 태풍이 몰아닥친 상황만큼이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역경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을 사이먼과 가펑클은 관세음보살의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불교에 웬만큼 관심이 있었다고 해도, ‘관세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와 같은 노래가 나오고, 또 전 세계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불교가 관세음보살에 부여한 ‘보편적 구원자’의 역할이 그만큼 누구에게나 설득력 있다는 반증이다. 관음신앙은 불교가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나가면서 수많은 관음성지를 만들었다.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산 포탈라카(Potalaka)는 스리랑카에서 멀지 않은 인도 남동쪽에 자리 잡은 것으로 믿어졌다.
당나라 승려 현장(玄裝, 602?∼664)의 인도 여행기인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인도 남쪽 해변의 말라야산 동쪽에 포탈라카산이 있으니 산길은 험하고 바위 모양은 기묘한데, 정상에 못이 있어 물은 맑은 거울과 같고 여기서 나온 큰 물길은 남해로 들어간다. 이 못가에는 석천궁이 있는데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이 왕래하고 계신 곳’이라고 묘사했다. 관음성지, 즉 포탈라카라는 상징성이 부여된 도량들은 곳곳의 바닷가에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바다가 없는 티베트에서조차 키추강을 바다로 상정하고 수도 라사를 포탈라카라로 의미를 부여했다. 라사의 포탈라(Potala)궁은 글자 그대로 포탈라카를 뜻한다. 그러니 포탈라궁의 주인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여기는 까닭이다. 중국에서 포탈라카는 발음에 따른 다양한 음역(音譯)이 이루어졌지만, 일반적으로 보타락가(補陀洛迦)로 표기한다.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저우산(舟山) 군도의 보타도(補陀島)가 대표적 관음성지다. 일본에서는 와카야마(和歌山) 현의 나치(耶智)산 세이간토지(靑岸渡寺)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세이간토지는 이른바 시코쿠(西國) 33관음성지의 첫 번째 순례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의상대사(625∼702)가 신라 문무왕 11년(671)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관음굴에 지었다는 강원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을 최초의 본격적인 관음도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과 인천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보문사, 경남 남해 보광산의 보리암은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낙산이나 낙가산은 모두 보타락가의 줄임말이다. 여기에 전남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을 포함시켜 4대 관음성지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33관음성지를 선정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관음신앙이 크게 번성한 일본의 불교신자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었다고 한다.
33관음성지는 4대 관음성지를 비롯해 서울의 조계사·봉은사·도선사, 부산 범어사, 경기의 용주사와 신륵사, 강원의 신흥사·법흥사·월정사·구룡사, 충남의 수덕사와 마곡사, 충북의 법주사, 전북의 금산사·내소사·선운사·백양사, 전남의 대흥사·송광사·화엄사·쌍계사, 경북의 동화사·은해사·직지사·고운사·기림사·불국사, 경남의 해인사와 통도사다. 목록을 보면 관음성지는 전국을 망라하고 있는 듯하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서울지역에서는 조계사와 봉은사, 도선사가 관음성지로 소개됐지만, 본격적인 관음도량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기는 서울에서 명실상부한 관음도량으로 내세울 만한 사찰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33관음성지의 선정에는 적지 않은 고심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대표적인 관음성지로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은 관음도를 하나 둘러볼 수 있었다. 연극의 거리로 유명한 대학로의 뒷산인 낙산의 안양암이 그곳이다. 안양암은 낙산의 남동쪽인 창신동 골목의 화강암 산기슭에 조금은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 바위산에는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이 있는데, 앞쪽으로는 경주 석굴암을 연상시키는 덧집이 세워져 있다.
낙산은 지명의 유래를 두고 몇 가지 설이 있다. 낙타를 닮아 낙타산이라고 불리다 낙산으로 굳어졌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졌지만, 조선시대 소의 젖을 짜서 신하들에게 나눠주던 타락색(駝酪色)이라는 목장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그럴싸하다. 하지만 한양 도성의 우백호인 인왕산의 인왕(仁旺)은 부처의 수호신인데, 좌청룡의 산 이름이 그렇게 싱겁지는 않을 것이다. 낙산 바위에 새긴 안양암 관음보살좌상은 옛사람들이 서울의 낙산 역시 양양 낙산사처럼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주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보타락가산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높이 3.53m의 관세음보살상 곁에는 마애불을 조성한 내력도 새겨놓았다. 관세음보살상이 조성된 1909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병탄이 이루어지기 바로 전해가 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긴 대한제국의 고통이 갈수록 깊어지던 시기다. 6.25전쟁으로 낙산이 판잣집으로 가득 찬 이후에도 가난한 피난민들에게 안양암 관세음보살은 더욱 의존하고 싶은 존재였을 것이다.
불교적으로 수도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과 그곳에 상주하는 관세음보살은 서울 주민 전체, 나아가 국민 전체의 구원자다. 낙산과 관세음보살상이 갖는 미술사적 가치 또한 어느 대표적인 관음도량보다 못할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 낙산과 관세음보살좌상의 가치는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낙산과 안양암 관세음보살좌상을 지금처럼 소외된 문화유산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문화유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를 높이는 작업만큼 중요한 문화재 보호정책이 어디에 있을까.
글˚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