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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 전통공예의 현대적 자화상 이도다완 일본의 국보 우리 막사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12 조회수 : 7256

 

 

이도다완

한국 땅에서 태어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불멸의 명품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 이도다완. ‘아름다움을 초월한 무심’, ‘꾸미지 않은 자연미’, ‘불가사의한 아름다움’. 이도다완을 향한 갖가지 찬사들이다. 누군가는 ‘한 번 만져보기만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여기에 일본인들의 탐미주의까지 더해지면서 마음에 드는 이도다완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도 불사했다. 울퉁불퉁한 표면과 대충 만든 듯하지만 균형을 이룬 모양에서 자연미가 느껴지고 조금 찌그러지면 찌그러진 대로, 옆이 터지면 터진 대로 무심결로 툭툭 쳐낸 듯한 거친 자국과 매화피의 불규칙하면서도 조화로운 응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자태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많이 닮은 듯하다. 그러나 이도다완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릴 정도로 대단한지를 생각해보면 자못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의 막사발이 이도다완으로 다시 주목받은 것은 위에서 열거한 예술적 가치도 있겠지만 일본의 차인(茶人)들의 고매한 심미안 또한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일본인의 이도다완에 대한 애정을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격동의 일본 정치사상 한가운데 그들 간에 협상과 동맹, 신뢰의 증표로 이도다완은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전국시대에 통일의 기틀을 닦았던 오다 노부나가와 통일을 이루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인에게 있어 최고의 영웅인 이들의 관계에 이도다완, 그 명성의 비밀이 있다. 당시 노부나가나 도요토미는 부하들과 차 모임을 자주 가졌는데, 가루로 만든 녹찻잎을 물과 섞어 거품을 낸 말차를 이도다완에 담고 한 잔을 돌려가면서 마셨다. 차 마시기가 일종의 혈맹 의식이 되는 순간이다. 이들은 이도다완을 선물하면서 무사들과 협상과 동맹을 받아내기도 했으며 사람을 포섭하기도 했다. 아끼는 다완을 선물함으로써 상대방의 충성과 복종을 받아낸 것이다. 소중한 다완을 준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실제로 이 방법은 노부나가가 자주 사용하여 상대방을 복속시키거나 동맹관계를 맺어 커다란 실익도 얻은 바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다완을 바침으로써 백기 투항을 하기도 했는데, 도요토미의 말을 어겼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쓰츠이 준케라는 성주가 이도다완(쓰츠이즈츠이도)을 사죄의 뜻으로 바쳐 용서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다완을 이용해 내 사람을 만들고 복종을 이끌어냄으로써 노부나가와 도요토미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이도다완 감상법에도 이런 사무라이 문화의 영향이 진하게 배어 있다. 다완을 감상할 때는 차를 마시기 전 먼저 주둥이를 보고, 마시고 난 다음 다완 안을 본다. 그러고 나서 몸통, 굽을 차례로 만져본다. 주둥이를 살피는 행동은 사무라이들이 차를 돌려가며 마실 때 남이 마시지 않은 자리를 찾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툭툭 불거진 다완의 몸통을 만지면서 평탄치 않은 사무라이의 인생을 읽고, 매화피라 불리는 울퉁불퉁한 다완의 굽을 만지면서 철갑상어 내피로 만든 사무라이의 칼 손잡이를 느꼈다. 전쟁터에서 칼을 잡는 것과 차를 마시면서 다완의 굽을 만지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하나였고, 그렇기에 차를 마시면서 상대를 쳐야 할지, 상대와 화친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유약이 안 묻어 속살이 보이는 부분에도 사연이 있는데, 사무라이가 아무리 속마음을 숨기더라도 언젠가는 본심이 드러남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정치적, 역사적 의미가 더해져 최고의 명품으로
이도다완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도자기 선진국인 조선에서 온 다완으로 차를 마시고 그 다완을 선물한다. 꽤 폼 나는 일 아니었겠는가! 그래서인지 고급 이도다완의 값이 성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로 치솟기도 했다. 이도다완에 대한 과열 현상에서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 다완을 싹쓸이하다시피 가져간 일본의 오만함이 엿보인다면 너무 삐딱한 생각일까? 다완을 부하들에게 주는 행위에서 전리품을 나눠주는 행위가 연상된다면 지나친 걸까? 이렇듯 이도다완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릇이다. 우리 땅에서는 ‘막사발’이라 불리며 별 볼일 없었던 그릇이 일본에서 국보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우리 문화의 수준이 이 정도’라며 으쓱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도다완을 평가절하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우리가 낳은 이도다완이 명품으로 자란 것은 일본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의 심미안이 우리보다 뛰어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일본 최고의 영웅이 전략적으로 채용한 차 문화 속에서 명품의 위상을 얻었고, 이러한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가치가 더해져 이도다완이 일본에서 살아 있는 역사로 국보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문화란 사물의 가치보다 정신적 의미부여가 중요하다’는 독일 현대미술가 요셉 보이스의 말을 상기해보자. 원작자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사람들의 의미 부여에 의해서 문화가 되고 명품이 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적 심성에서 나온 이도다완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내세우기도 하고, 일본인들은 자기네 심미안이 그 가치를 알아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낳은 정이 먼저인지 기른 정이 먼저인지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로 입씨름하기보다는 이도다완도 문화의 의미 부여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막사발을 그들의 역사 안에서 살아 있는 신화를 만들고 국보로까지 만든 일본을 보면서 왠지 으쓱하고 우쭐해지는 자만심은 이 정도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글˚최웅철 (아트디렉터)